로랑스 선교사의 소감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로랑스, 나는 너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 너는 고아가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 마음에 드는 딸이다.” 저는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삶을 살게 되었고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는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선교사의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가장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행복하고 생명에 넘치게 하는 , 풍부한 삶을 사는 것은 대단히 선물이고 저에게 기적입니다!

 

저는 벨기에 사람인데, 벨기에는 아주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소국’이라고 하지요. 작은 땅이지만 우리의 벨기에는 대단히 열려 있고 외국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국가입니다. 우리의 수도는 – 브뤼셀 – 유럽연합의 수도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도시라, 길거리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남미 사람들, 유럽 사람들, 아시아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이 다양한 “작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특히 여덟 살 때는 우리 고향에 라오스난민 한 50명이 왔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은 이 난민들을 오래 동안 열심히 도와주고 옷에서부터 음식, 집, 일자리에 이르기까지… 전쟁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 난민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한 20년 동안, 라오스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지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바닥에 앉아서 손으로 밥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자주 같이 밥 먹고 가끔 라오스 전통적인 결혼식이나 “Pimay”라는 라오스 설날의 잔치 자리에 함께 했는데, 이때마다 저는 “눈을 들어” 멀리 라오스까지 보는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을 위하여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 무엇인가 쓸모 있는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미사 때 “이 세상이 죽어가지 않게 합시다.”라는 프랑스 성가의 반복구를 들을 때마다 저는 “맞다, 맞다!!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다 죽어가서는 안 된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꼭 해야 한다.”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어린이의 소망은 하느님의 소망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제 마음 속에 “이 세상은 뭐가 필요하냐?” 라는 고민이 계속 있었고 특히 대학 입학하기 전에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뭘 공부할까?“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고, 간호사도 되고 싶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마침내 불-스페인어문학과를 선택했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다른 국제적인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3학년 때부터 그 공동의 “프로젝트아파트”에서 남/여학생 8명과 함께 아주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우리의 “프로젝트”(봉사활동)는 이 대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대학생들을 환영하고 도와주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지도하기도 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놀고 여기저기에 벨기에를 조금이라도 구경하거나 그 친구들의 나라를 알게 되고 그 나라의 음식, 음악도 함께 듣는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 3학년 동안에만 새 친구 된 사람들이 한 30명이었고, 15개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거의 온 세상이었죠!!                         

여러분들은 아마 제 이야기를 듣고 “아, 로랑스는 세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어린 시절부터 선교사가 될 계획이 있었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다양한 체험이 저에게는 좋은 선물이었지만, 15살 때부터 우리 가족은 고통 때문에 점점 힘들고 아주 슬프고 우울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날 우리 아버지께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돌아가심 앞에서 사춘기를 겪고 있었던 저의 원래 행복한 삶이 “어두운 밤”에 점점 들어가고 있었고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과 부조리한 느낌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부는 왜 해야 되나? 어쨌든 우리들이 모두 다 죽을 거예요! 앞으로 미래의 계획을 – 직업, 결혼, 가족 – 왜 만들어요?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만약에 제가 아버지처럼 갑자기 죽는다면 이 모든 계획들이 일순간에 (금방) 없어질 거예요!!” 이와 같은 내 불쌍한 마음이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낳았습니다. 정말로 그 때 제가 얼마나 슬프고 힘들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도 그때 제 “고아가 된 마음”은 귀머거리 같았습니다. 네, 그 때는 제가 아버지가 없는 딸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고아” (하느님 아버지 없는 사람), “사랑의 고아”로 자랐습니다.  사실, 제 마음은 하느님과 깊은 화해가 필요했습니다. 6년 동안 (15살부터 21살까지) 그 우울한 삶을 겪었던 나는 그 큰 고통 때문에 하느님과 많이 떨어져 살아왔습니다. 떨어져 있었지만 그 6년 동안에 하느님께서 제가 겪는 고통을 똑똑히 보셨고 내 마음에 숨어 있는 눈물과 슬픈 목소리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듣고 계셨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항상 계심을 깨달았고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그 고통을, 그 흐르는 눈물을 같이 나누고 계셨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고아의 눈물이 그 뺨에 흘러내리고 눈물을 흘리게 한 자를 거슬
러 그가 부르짖지 않겠느냐?” (집회 35, 17-19). “로랑스, 나는 너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 (요한 14,18). 이 두 말씀을 통해서 제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럼, 그 동안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예수님이 내 상처를 자기 상처처럼 짊어졌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저에게 부활, 정말 부활이었습니다! 그 날에 제가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래된 “어두운 밤”에서 빛으로 다시 태어났고 슬픔에서 하느님의 기쁨으로, ‘유죄 판결’에서 자유로 다시 태어났는데 그 날도 마침내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됐습니다.

“로랑스야, 나는 “목마르다” (요한 19, 28). 나는 로랑스의 다시 태어난 삶, 화해된 삶이 필요하다. 나는 로랑스의 쓸모없었던 삶을 나에게 쓸모 있는 삶으로 만든다. 나는 로랑스를 내 사랑하는 세상에 보내고 싶다. 로랑스의 친구들, 로랑스와 같은 젊은이들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아직 못 느꼈기 때문에 “고아”처럼 살고 있는 것을 알아요? 그들에게 새로운 삶, 새로운 미소, 새로운 행복을 나눠 주십시오!”

그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부르심을 듣고 나서 “네, 예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어디서나 필요한 곳에 부족한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는 응답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mariamatossemd로랑스 선교사의 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