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순 제3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 4장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신 말씀입니다. 얼마전에 오늘 복음에 대해 글을 쓸 일이 있었는데, 그 제목이 마음 들어주기였습니다. 그 글을 쓰려고 생각했을 때 선교회 입회할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선교회에 입회하여 양성을 받으러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 본당 큰 수녀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수녀님께서는 “가는거야? 진짜? 아니, 대체 왜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선교회에 들어간다는 거야? 한국 사람들끼리도 서로 말이 안 통할 때가 많아서 답답한데, 외국 사람들이랑 언어도 안 통하고 어떻게 할거야?” 하시며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이 예뻐해 주셨던 수녀님을 안심시켜 드리려고 씩~ 웃으며 이렇게 말씀 드렸지요.” 수녀님! 한국 사람들끼리 같은 언어를 쓰고도 말이 안 통하면 얼마나 열불 나겠어요. 차라리 언어가 안 통해서 이해 못하면 핑계라도 되니 더 낫지 않겠어요.?“ 그리고 아르헨티나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실제 아르헨티나에 가서 살기 시작하니 수녀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기 수준의 스페인어 실력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과정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 때 정말 인내로이 제가 말하는 것을 기다려주고 이해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선교회 사제인 호세 마누엘 신부님은 저와 나이는 서른살정도 차이가 났지만, 언제나 친구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저의 스페인어 고해를 알아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자란 언어라도 고해를 하고 나면, 늘 마음이 다시 숨을 쉬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신부님을 통해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어로 귀와 입만이 아니라 마음도 닫혀버리곤 했던 저를 위로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괜찮아”, “잘 하고 있어”, “천천히 조금씩 하면 되지” “이렇게 가면 될 것 같아”. 그런 말씀들을 통해 정말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신부님은 내 언어를 알아들었다기보다, 마음을 들으려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셨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고민들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녀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도 단죄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바르게 말했다며, 그 마음의 솔직함을 칭찬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나의 모든 마음을 다 들어주십니다.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들어주시고, 표현하는 것 너머의 나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내 마음,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십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심술난 마음도 다 들어주십니다. 그렇게 나의 말과 마음을 아무런 오해 없이, 아무런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주셨을 때, 나는 깊은 신뢰와, 형언할 수 없는 자유와 해방을 느끼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써 해방과 자유를 맛보았기에, 이웃들, 어쩌면 평소에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이들에게까지 다가가 기쁜 소식을 알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유로워진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도, 그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처럼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내 감정, 내 생각대로 듣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 너머에 담긴 그 사람의 마음을 열린 마음으로, 내 것이 비어있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하며, 다른 이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볼 수 있는 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신은주 크리스티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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