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전교의 주일의 에스텔 선교사 강론

2019년 10월 20일이 전교 주일이라 광주 퐁암 성당 신부님께서 강론 때 우리 선교체험을 나워해 달라고 초대해 주셨습니다. 다음 글은 그날에 에스텔이 나눈 강론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교사 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스페인에서 온 에스텔 선교사입니다.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소속이고요, 한국에 온지 13년이 되었습니다. 매년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이고 전교의 달입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특별 전교의 달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은 특별 전교의 달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맑은 전교의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 있을까? “선교” 라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오르세요? 혹시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훌륭한 사람을 생각하세요? 먼 곳에 가서 매우 가난한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돌봐주는 사람 떠오르세요? 아프리카에 작은 병원에서 일하는 수녀님이 떠오르세요? 옛날에 저는 “선교”라고 하면 “The misión” 영화를 떠 올렸었습니다. 그 영화는 남미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어려운 생활을 보내는 선교사들의 이야기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옛날에 “선교” 라 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어렵다, 고생한다” 이었습니다. 먼 곳에 가서 하는 선교는 외방 선교라고 합니다. 라틴말로 Missio Ad Gentes, 만민에게 하는 선교, 그리고 하느님께 봉헌하고 평생 동안 하는 선교는 Ad Vitam 이라고 합니다.

외방 선교는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특별 전교의 달” 선포하면서 “선교”하라고 하셨을 때… 가족을 떠나시라고, 외국에 나가시라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교를 하라고 하셨을까요? 어떤 선교에 대해서 말하고 계실까요? 우리 모두가 선교사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젊은이들, 주님께서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 공장, 상점, 은행, 식당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 직업이 없는 모든 이들, 병상에 있는 모든 이들, (…)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하느님의 ‘선물’ 로서, 여러분 각자의 모습 그대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사입니다” (특별 전교의 달 개막 저녁기도 때 하셨던 말씀중)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교는 어떤 것인가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어떻게? 교황님께서 같은 메시지에 쉽게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십니다. “특별 전교의 달’이 “우리가 정신 차리고 능동적으로 선을 행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은총의 수호자가 아니라, ‘선교사’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개막 저녁기도 중)

선교의 반대말 어떤 것인지를 아세요? “태만은 선교의 반대말입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착하게 살려고, 질투를 안 하려고, 뒷담화를 안하려고 애를 씁니다. 주일 미사도 나오고, 레지오도 하고 성가대, 봉사활동, 이미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이미 선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을 위해서 애를 쓰는 것, 본당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것, 등, 등, 그런 활동이나 노력은 매우 아름답고 대단합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고, 느끼고 계시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무척 필요하시고 너무도 목마르셔서 우리에게서 목을 축이실 물 한 방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느 날 그분께서 “이번엔 내 차례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한 때 메말랐던 그 입술을 여시고 저 유일하고 영원한 사랑의 단어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때! “고맙다”는 말씀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의 편지 95. 86)

교황님께서, 우리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선교 사명을 거스르는 잘못들은:

        1. 우리가 세상에 기쁨을 전하지 못할 때
        2.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갈 때, 스스로를 희생자로 여기며 누구도 우리를 사랑하지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3. “이 세상과 교회의 상황이 점점 더 악화돼 간다” 며 불평을 늘어놓을
        4. 우리를 마비시키는 두려움의 노예가
        5. 삶을 선물이 아닌 짐으로 느끼며 살아갈

선교한다는 것은 그럼 쉽게 5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겠습니다. 

        1. 기쁨을 전하는 것
        2. 고통 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공감할 아는 것 (사랑 중심)
        3. 긍정적인 자세, 말, 태도로 살아가는 것
        4. 신뢰, 자유 안에 활동하는 것
        5.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

하지만 우리가 인간이잖아요. 모두가 지치고, 피곤하고, 인정을 받고 싶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한데 어떻게 이런 선교사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있을까?, 제가 아까 쉽다고 했는데, “기쁘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신뢰안에서, 감사하면서” 매일 매일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습니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선교사의 삶은 은총의 삶입니다. 은총의 삶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제 삶에, 제 상황에 느끼고 또 느끼고 체험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하고 온유로운 사랑을 제 삶에, 제 상황에 느끼고 또 느끼고 체험하는 삶입니다. 성령님의 음성과 힘을 제 삶에, 제 상황에 느끼고 또 느끼고 체험하는 삶입니다. 사랑을 받아서 사는 삶입니다. 신앙 생활은 사랑을 받는 삶입니다. 실천도 해야 하겠지만, 신앙 생활은 먼저, 더 크게 사랑을 받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요한의 첫째 서간 4장 7ㅡ19)

우리가 매일 하느님에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새 시작하듯이 예수님의 위로와 힘을 받지 않으면, 성령님의 힘과 이끄심에 따라 살지 않으면 선교사의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왜 한국에서 살고 있을까요? 다른 할 일이 없어서…결혼할 사람이 안 나타나서, 김치를 좋아해서,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서, 봉사하는 삶은 너무 재미있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해외에 선교에 나가기 재미있어서… 아닙니다… 저는 20살때 크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또 느끼고 체험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창조하셨다고”, “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일하고 예쁜 딸이라고”, “하느님께서 손수 오직 사랑으로, 만드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유아 세례를 받고, 늘 신자 이었으니까요).

그 때 처음으로, 마음으로 ,믿고 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그 때 다른 대학생들과 똑 같이 공부 조금하고 자주 놀고, 여행을 하고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가톨릭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감실 안에, 미사에,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 정말로 계신다는 걸 알았고, 작고, 온유하고, 깨끗하게 오직 사랑으로 침묵하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다른 청년들의 마음을 저에게 들려주고 계셨습니다. “목 마르다고”, “도와 달라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 때 제 친구들 중에 지치고, 희망을 사라지고, 삶의 의미를 무너지고 있었던 친구는 많았습니다. 성령님은 나에게 점점 원래 “저만 챙겼던” 저는 눈을 열리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보게 되었고, 마음은 따뜻해졌고, 귀가 열리게 되었고, 손, 팔, 발을 바빴졌습니다.

한국에 온다는 것은… 제 힘으로?, 제 성향으로?,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모든 청년들 똑같이 이 사회를 말하는 성공을 하고 싶었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올해 특별 전교의 달 주제는 “세례를 받고 파견된 이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 가장 멋진, 예쁜 아들, 딸들로 태어났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커다란 사랑을 대상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입과 귀를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모두 세례를 받았으면 새 삶을 받았으며 새 피조물이고 파견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례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했던 경험을 매일 잊고 삽니다. 매일 매일 이 아름다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새로 느껴야 하고 기억을 해야 합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방문하고 대화하고 그분의 겸손과 온유를 되 찾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서, 마음 속에 양심을 통해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각자의 모습 그 대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때, 선교사 입니다.” 작은 일 안에서 큰 기쁨으로 사소하고,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큰 미소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딸이니까, 아들이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서 모든 것들을 내려 주셨으니까요…

대학교 친구의 어머님이 마약중독자이었고 성매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상처를 갖고 있었던 친구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버림을 당해서 늘 창피하고 늘 눈에 슬픔이 쌓여 있었떤 친구이었는데, 어느 날, 제가, 하느님을 만나고나서 같이 기도모임을 하자고, 성경 말씀을 읽어 줬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사 49,15). 이 친구에게는 이 말씀과 그 기도 시간이 삶에 전환점 (Turning point) 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기쁨을 되찾았고 지금까지 정말 기쁘게, 봉사 하면서 하느님의 자녀 되어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 받고 살아가는 친구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바탕엔 따뜻하고 힘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상처를 치유 가능하시고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힘과 위로를 주십니다. 어둠에서부터 빛으로, 슬픔에서 희망으로 이끌어가는 강한 사랑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이를 늘 가까이에 두고자 심지어 그를 손바닥에 새겨 놓는 연인에 당신을 비유하십니다.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이사 54,10)

하지만 여러분 중에 무조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저를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저에게는 아니에요. 저는 달라요. 선교사님이 제 역사를 잘 모르셔서, 제 상처나 상황을 모르셔서 이런 “비현실적인” 말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한명씩 한명씩 예외 없이 말할 확신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으시며 여러분을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기억, 메모리는,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 늘 보관하는 “하드 디스크” 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메모리는 우리에게서 모든 악의 흔적을 “삭제하며 기뻐하는 부드러운 자애로 가득한 마음입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주신다” (스바 3,17)

오늘은 본당의 날을 기념하면서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받았던 선물을 되세기고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합시다. 앉아서 형제 자매들을 기다리지 말고 쉬지 않고 그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합시다. 하느님께서 그분들을 안아주고 싶고 위로를 주고 싶고, 희망을 나누고 싶고, 미소를 짓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몸, 손, 눈, 발, 다리 하느님께 빌려드려, 활동할 수 있게 허락합시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mariamatossemd2019년 전교의 주일의 에스텔 선교사 강론